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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年 9月 韓·日歷史文化探險隊

부산지방기상청 / 임시수도기념관 / 구 경남도청

부산지방기상청

위치 :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1가 9-305
공사기간 : 1933년 7월 ~ 12월

우리나라는 기원전 1세기경부터 안개, 일식 등이 관측된 기록과 삼국시대 들어와서는 천둥, 번개와 홍수로 기상재해가 발생하였다는 상세한 기상기록도 전하여 오고있다.

조선 세종 23년(1441년)에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를 발명하여 8도감영에 설치함으로써 과학적인 전국의 강우량 측정망을 구성하고, 강우량을 측정하여 보고하게 되었다.

1904년 3월 7일에는 기상업무 전담기구인 측우소가 부산. 인천.목포에 설치되어 체계적인 기상업무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1905년 12월 31일 현 부산기상청 자리로 청사를 지어 옮겼고, 1906년 9월 1일 기계식 지진계를 설치하여 지진측정이 시작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 1월 복병산에 현 청사를 준공하였고, 건물은 4층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서구양식의 변형된 르네상스 양식이며, 본 건물의 양식은 선박(범선)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꼭대기 층과 지붕의 모습은 선장실을 상징하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 1939년 8.15광복 이루 10월 국립 중앙기상대 부산측우소로 개칭하였다가, 1992년 부산지방기상청으로 승격하여 부산,경남지역과 남해안 일부의 기상관측을 담당하고 있다. 부산광역시에서는 지방기념물 제51호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측후소라는 표지석물

 

임시수도기념관

위치 :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 2가 22번지

임시수도기념관은 진주에 있던 경상남도 도청이 부산부 부민동으로 옮겨온 것은 1925년 4월 17일이었다. 그에 따라 부민동 3가 221번지에 경상남도지사 관사가 1926년 8월에 준공되었다. 건물은 목조 2층 일식기와집 양식이다. 그 이후 줄곧 도지사 관사로 쓰이다가 8월 18일에 부산으로 수도가 올겨져 경상남도 도청이 중앙정부 청사의 중심부가 되고, 도지사 관사가 대통령이 집무하는 관저가 된 것은 1950년 8월 18일 이후였다. 그러나 그해 9월 28일 서울 수복과 함께 정부는 서울로 환도(8월 15일)할 때까지 부산은 중앙정부의 임시수도 역할을 맡고 있었다.

1963년 부산시가 정부직할시로 승격되면서 경상남도의 관할에서 벗어나고, 경상남도 도청은 1983년 7월 창원에 새청사를 신축하여 옮겨갔다. 옛 경상남도도청은 부산지방검찰청과 부산지방법원청사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와 함께 도지사 관사는 1984년 6월 25일 임시수도 당시의 역사적인 사실과 유물전시를 위하여 임시수도기념관으로 지정되었다.

기념관에는 임시수도 당시의 이승만 대통령의 유품을 중심으로 하는 소장품이 여섯개 방에 전시되었다.

임시수도기념관은 6.25전쟁 44주년을 맞아 1997년 6월 24일에는 한국전쟁의 내용과 임시수도로서의 부산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으로 새롭게 단장하여 기념관으로서 민족상잔의 역사를 이해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새천년을 맞아 부산광역시에서는 건물의 개.보수와 한국전쟁 당시의 생활유물 등을 수집, 구입을 통해 새롭게 단장하여 재 개관하였다.

2000년 부산광역시에서는 건물의 전면 개보수를 통하여 전시공간의 재단장을 위한 시설공사를 진행하였다. 부산시 기념물 제53호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구 경남도청

위치 :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 2가 1번지
공사기간 : 1923년 ~ 1925년 4월 , 붉은 벽돌2층 일(日)자형


경상남도청은 1925년 4월 1일(실제 업무개시는 4월 25일)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겨왔다. 일제가 내세운 도청이전의 이유는 부산은 유일한 항만관문 뿐 아니라 교통의 중심지이며, 산업.교육.문화 등의 시설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었다.

당시 도청은 부산부 부민정2정목(현 부민동 2가)에 있었던 자혜병원의 신축 건물에 임시로 사무를 보게되었다. 또한 병원 주변 대지 8,735.7평을 경남도청 건물 및 그 대지로 책정했다. 1923년 착공하여 1925년 4월 준공하여 경상남도청사로 사용하였다.

도청은 2층 붉은 벽 돌 건물로 서구식 르네상스 양식의 변형된 양식으로, 지금은 부산지방 검찰청사(구 경남도청사)로 사용하고 있다. 1983년 도청이 창원으로 옮기기 직전에는 서구 부용동 2가 16번지 일대 4필지와 부민동 1가외 12필지의 대지 9,619평에 경상남도 본청 등의 건물에 있었다.

8.15광복이후 미군정기를 거쳐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1년 10개월 만인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북한군의 남하로 8월 18일 정부가 부산으로 이전하였고, 9월 28일 서울수복으로 10월 27일 서울로 환도할 때까지 1차로 임시수도로서 경남도청의 본관은 정부청사로, 상무관은 국회의사당으로, 뒤편 경찰국은 군.경합동작전사령부로 쓰였다.

경상남도도지사의 관사는 대통령관사로 이용되었다. 1951년 11월 28일 중공군 개입으로 1월 4일 2차로 1.4후퇴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어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으로 환도(8월 15일) 때까지 1차 때와 같이 사용되었다.

1963년 1월 1일부로 부산이 정부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경상남도는 부산시에 더부살이 역사가 시작되었다. 1983년 7월 창원의 경남도청사 이전하기까지 58년 3개월간을 사용하였던 건물이며, 일제강점기 일본제국주의의 수탈정책의 본거지였던 상징적 건물로서 일제잔재중 하나이며 대표적인 건물이다.

이 건물은 도청이 창원으로 이전과 동시에 부산지방검찰청과 부산지방법원이 인수 청사로 사용되다가, 2001년 10월에는 연제구 거제동으로 법원과 검찰청사가 이전하였고 현재는 동아대학교 부민캠프스로 사회과학대학 등이 옮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