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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年 8月 韓·日歷史文化探險隊

동래별장 / 송정역 / 부산철도차량정비창

동래별장(東萊別莊)

동래온천은 부산 도심지에서 동북으로 약 1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1691년(300여년전) 조선 숙종때부터 온천으로 사용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폐쇄되었다가 1883년 온천장으로 재개장되었다.

1889년까지만 해도 "금산부락" 또는 "금정리"라고 호칭되던 이 온천장은 30여가구의 한적한 시골이었다. 이곳이 온천리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10년 한일 합방 직후부터였다. 당시 동래부에 속해있던 산저리와 장전리가 통합되면서 부터였다.

온천장은 한일합방 직후부터 일본인들에 의해 온천시화(溫泉市化)했다. 그 무렵부터 여기에 별장들이 들어섰다.

한일합방을 전후하여 부산진과 동래간에 경편철도가 놓여졌고, 1915년 10월에는 조선와사전기주식회사(朝鮮瓦肆電氣株式會社)가 전차로 바꾸었다. 조선와사전기주식회사는 전차외에 여관, 대욕장, 요리점을 만들어 이를 개발했다. 일본인촌화했다. 이에 우리 조선인들의 여관도 들어섰다. 1922년에는 만주철도주식회사가 이를 인수 철도호델과 요양소를 지었다. 1923년 8월에는 전국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버스도 이때부터 운행되기 시작했다

1942년 8월에는 일본인들이 주측이 되어 동래온천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일본인은 40명, 조선인은 17명이주주였다.

이즈음 일본인 하자마(박간방태랑,迫間房太郞)은 이곳에 자신의 별장 박간별장(迫間別莊)을 짓고, 박간탕원(迫間湯源)이라 불렀다. 박간탕원(迫間湯源)이 현재의 동래별장인 것이다.

하자마(박간방태랑,迫間房太郞)은 1880년 5월 부산 개항 직후 우리나라에 건너왔다. 그는 일본 화가산현(和歌山縣) 출신으로 오사카시 오백정장(五白井長) 상점의 부산지점 지배인으로 부산에 왔다. 처음에는 무역업으로 돈을 벌었고, 이어 토지와 가옥 등을 수매, 굴지의 부동산업자가 되어 부산 제1의 재벌이 되었다. 패전 후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는 1918년 일본에서 목수를 직접 데려다 동광동 2가 5번지에 박간총본점 점포겸 주택 2층 짜리를 세우기도 했다.

해방이 되자 1945년 9월 5일 일본인들이 경영하던 호텔, 여관 등은 연고가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접수했다.이곳에서 동래,양산,밀양,울산 등지의 군정사무를 관장했다. 인근의 동래호텔은 미 G-2부대가 주둔하게 되었다. 1952년 피난 정부 요인들의 파티장으로 송해관(松海館)이 주로 이용되었다.

미군이 상륙하자 박간별장(迫間別莊)은 경상남도 제3지구 군정청이 자리잡았다. 특히 6.25동란때에는 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본관 목조 2층의 200평 규모에 3000여평의 내부정원과 수목 건물내부의 석조 욕조는 국내에 그 사례가 없는 것으로 한 시대사를 담고 있는 건물이다.

금강공원 내에도 위 사진의 4각 13층 석탑과 동일한 형태와 크기의 탑이 있습니다. 일본인의 정원이나 별장에 많이 세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송정역(松亭驛)

위치 : 해운대구 송정동 324번지 (전화 : 743-7788)

송정이란 지명은 광주노씨의 선조가 완만한 백사장이 내려다 보이고, 해송림이 울창한 언덕에 정자를 지은데서 연유하였다고 한다. 송정해수욕장 일원을 원래 가래포라 불렀는데, 가래는 갈대를 가리키는 사투리고 송정천과 바다가 맞닿은 곳에 넓은 갈대밭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구덕포는 조선말기 동래군 원남면의 아홉포구 중의 하나라고 전해지고 있다.

연혁
일제시대인 1934.12.16 역원 무배치 간이역으로 개역하여, 1941. 6. 1 보통역으로 승격되어 송정해수욕장을 인근에 위치하며, 1976. 7. 1 차급화물 중지하고, 동해 남부선의 해운대역과 기장역의 중간에 위치 합니다. 현재에는 영화촬영 장소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송정해수욕장에 위치한 송정역은 여객승강장이 1개, 운전취급은 여객열차 22회 통과, 12회 정차, 화물열차는 17회정차한다.수송현황은 승차인원 334명, 하차인원 318명이다.


주변 관광지 : 해수욕장(100m), 용궁사(3km), 사랑대(3km)

 

부산철도차량정비창 (釜山鐵道車輛整備倉)

위치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동 965-3 (신천로 125번지)

일제시대인 1904년 2월 1일에 일본인에 의하여 "초량 기계공장"으로 출발하여, 1945년 해방 이전까지는 일본인에 의하여 운영되었습니다.. 현재에도 일제시대의 건출물이 많이 산재 해 있습니다. 위 사진의 시설은 철도 차량에 냉각수을 공급하는 시설이며,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일제시대 부터 사용하던 본관의 건물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현재에는 본관 건물의 신축으로 인하여 이전하였고, 내부는 리모델링을 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보면 근대 건축물로서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위 건물은 "부산철도역사박물관"으로 만들어서 한국철도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

화차 작업장으로 표기된 이 건물도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건물이며, 현재에도 작업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부산철도차량정비창(釜山鐵道車輛整備倉)은 부산철도의 역사를 상징하는 곳이며, 많은 부분에서 보존이 잘되어 있습니다.

 

위 사진의 건물도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건축물로 현재에도 작업장으로 활용하고 있어며, 제한적이지만 민간인에 개방하여 부산철도역사의 교육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타당 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