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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年 3月 韓·日歷史文化探險隊

거제역 / 성지곡수원지

거제역

위치 :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동 664번지

소개 : 거제역은 여객승강장이 1개, 운전취급은 여객열차 25회정차, 20회통과, 화물열차 2회정차 16회 통과하고 수송현황은 승차인원 38명, 강차인원 44명, 화물발송 1.4t, 화물도착 0.7t 규모의 작은 역이다.

연혁

일제시대인 1942. 7. 1 임시 승강장으로 개설하여, 1943. 6.30 현재에 아래에 있는 사진의 역사를 신축 준공하였고, 동시에 역원 배치하였습니다. 동해남부선의 간이역으로 조성하여, 현재까지 현존하고 있습니다. 현재 부산지역에 있는 일제시대의 남아있는 역사4개 중의 하나입니다.
일제시대를 지나 해방을 맞이하여 1948. 3. 1 보통역으로 승격하고, 부산지역의 중간기착역으로 많은 물류를 담당하고 있고, 1954. 8. 1 육군 기지창 전용선 부설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성지곡수원지

소재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부산어린이대공원 내
수려한 경관과 함께 어우러져 도심 속의 공원으로 자리잡고 있는 어린이대공원은 수원지, 동물원, 수영장, 주변 산책로, 체육공원 그리고 각종 놀이 시설들이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공원 내에는 삼나무, 편백나무, 소나무 등의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는 산림욕장에는 3.5km의 욕로를 걸으며 건강관리에 큰 효험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수원지 입구로 진입하면 일제시대 때에 일본인들이 인위적으로 삼나무(스기)를 대량으로 성지곡수원지 인근 야산과 입구에 심었습니다.. 그것은 배(선박)에 돗을 다는 "돗대"로 활용하기 위하여 자연환경이 좋은지역에 많이 심었습니다.

성지곡수원지의 제일 밑에 위치하는 2개의 배수로로 구성된 다리의 모습, 일제시대 축조한 다리의 모습

어린이 대공원내에 있는 어린이회관에는 어린이들이 마음껏 즐길수 있는 갖가지 시설이 마련되어 있고 과학 실험시설도 갖춰져있어 휴일이면 부모와 동반한 어린이들로 붐빈다. 어린이회관 지붕에 마련되어 있는 전망탑에 오르면 생동감 넘치는 시가지의 전경을 한눈으로 내려다 볼 수 있다.

2단으로 축조된 성지곡수원지의 제일상단의 모습

성지곡수원지는 부산어린이 대공원 내에서 동물원 방향으로 하천을 따라 5분정도 가면 성지곡수원지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동천의 상류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성지곡수원지가 있다.부산의 이름난 경승지로 전설에 의하면, 신라시대 유명한 풍수지리 지관인 성지라는 사람이 전국의 명산을 찾던 중 경상도에서 가장 빼어난 골짜기를 이곳에서 찾고는 성지곡으로 명명하게 되었다 한다. 우리나라에 있는 상수동의 도입은 부산에서 비롯되었다. 부산은 원래 음료수가 부족했고, 강우량이 적은 겨울철이면 항상 물이 부족하였다.

성지곡수원지의 하단에 해당(물이 흐르는 곳), 뒤편에 높은 축대가 보이는 부분이 상단에 해당

개항이후 일본거류지내에서는 왜관 내에 과거부터 내려오던 2갱의 정호수(井戶水)를 사용해 오다가 1880년 처음으로 보수천 상류로 대흠통에 의한 도수설비를 하여 물을 받아쓰기 시작했고, 1886년에는 이를 나무통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시설만으로는 거류민의 급증과 다수의 일본어선에 대한 급수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 데다가 청일전쟁의 발발로 다수의 일본군인들까지 상륙하게 되자 1894년 6월부터 보수천에 집수언제(集水堰堤)를 축조하여 자연여과장치로 하는 한편 일본거류지 내의 대청동 배수지를 만들어 내경 약 15cm(6인치)의 토관(土管)으로 이를 송수(送水)하는 공사를 시작하여 1895년 1월에 준공하였다.

성지곡수원지의 하단에 해당하는 옹벽과 물이 흐르는 모습

이것이 부산상수도의 효시이며, 서울상수도보다 약 13년이 앞선다. 성지곡 상류에 있는 수원지는 1907년 일본인들에 의해 착공되어 1909년 9월에 완공(면적은 7,920평방미터)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상수도원의 수원지로서 제방의 높이가 27m에 이르는 철근콘크리트로 축조된 시설이다.

성지곡수원지 상단에 해당하는 옹벽의 모습

당시로서는 거대한 토목공사였고, 서면에서 초량왜관(현 용두산공원 일대)이 자리잡고 있었던 지금의 동광동까지 급수한 유명한 수원지에 해당된다. 그러나 1972년 물금에 낙동강 상수도 취수공사가 완료됨에 따라 이 수원지는 유원지와 어린이 대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성지곡수원지의 상단의 옹벽(27m)과 하단에 물이 고여 있는 모습

청춘 남녀의 데이트 코스로 먼진 곳이다.

성지곡수원지 2단으로 축조된 성지곡수원지의 제일 상단의 모습

공사기간 : 1907-1909

자문엔지니어 : 교수 나카지마 박사
감독엔지니어 : 사노 증폭,변조연구소 회장
주재엔지니어 : 아사미
실행엔지니어 : 토모나가

위 사진의 초석을 보면 영어로 기재되어 있다. 성지곡수원지를 축조할 당시에는 대부분의 공식문서에는 한문으로 기재 되어 있는데, 성지곡수원지의 초석은 영어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성지곡수원지 축조에 관여한 엔지니어들이 서양(미국,유럽 등)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리고 성지곡수원지 축조에 관여한 엔지니어는 서양에서 신식교육과 문화를 접하고 있어던 것으로 보이며, 일본의 상당한 엘리트로 추정됩니다..감독엔지니어인 사노 증폭,변조연구소 회장이 성지곡수원지의 축조과정에 참여한 것으로 보아 부산지역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위하여 수력으로 "전력(전기)"를 생산하려고 한 것거나 아니면 토목분야가 분화 되지 않아 전기분야에 토목분야가 포함되었거나 2중의 하나로 추측됩니다. 사노 증폭,변조연구소 회장이 성지곡수원지의 축조과정에 참여한 것으로 보아 성지곡수원지가 아주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성지곡수원지를 축조하여 일본거류인의 식수(물)와 부산포항을 출입하는 일본의 선박에 "물" 을 공급하고, 삼나무(스기목)을 심어서선박의 재료인 돗을 달기위한 재료인 돗대를 생산하였고. 부산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위하여 수력을 이용한 "전력(전기)" 을 생산하려고 한 것으로 추측된다.

성지곡유원지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일본인에 의하여 축조된 수원지 이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상수도 시설"로 추정되며, 우리나라 최초의 수력을 이용한 "전기"를 생산하려고 한 곳으로 뜻이 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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