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月

2月

3月

4月

5月

6月

7月

8月

9月

10月

11月

12月

HOME

2003年 1月 韓·日歷史文化探險隊

금강원(金剛園) / 4각13층 석탑 / 황기(皇紀) 2600년(서기,1940년) 기념비

 

금강원(金剛園)

◈ 소재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1동 산27-9번지 일원
◈ 면 적 : 3,093,953㎡(936천평)

일제시대 "동래 금강원(金剛園)"으로 명명된 표지 비석

연못

=============================================================================================

일제시대 4각13층 석탑

      

금강공원 내에 있는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일제시대 4각13층 석탑

http://www.kyohaku.go.jp/mus_dict/hd38j.htm

http://www.city.sakaide.kagawa.jp/local/sr01.html

일제시대 4각 13층 석탑이 무슨 이유로 현재의 위치에 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고, 위 홈페이지 주소를 확인하면 어느정도 이해가 가능합니다. 이런 양식의 탑은 일본 사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일제시대 4각 13층 석탑이 있는 현재의 위치에 사찰이나 아니면 돈이 많은 재력가가 별장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다른지역에 있던 많은 우리나라 문화재(이섭교비,내주축성비 등)를 옮겨왔고, 주변에 연못이 있으며,정면에서 보면 산 정상에서 부터 물이 흘러서 2개의 물이 만나는 곳에 연못이 있고, 오른쪽에 1개의 물줄기를 형성하는 쪽에 "황기(皇紀) 2600년 기념비"가 있고, 왼쪽에 1개의 물줄기를 형성하는 쪽에 "일제시대 4각 13층 석탑"이 있습니다. 2개의 물줄기를 합류하는 지점에 연못이 있습니다.오른쪽에는 "황기(皇紀) 2600년 기념비"와 왼쪽에는 "일제시대 4각 13층 석탑"이 있어서 한 곳으로 합류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풍수지리적으로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금강공원 내에 있는 일제시대 4각13층 석탑

=============================================================================================

황기(皇紀) 2600년(서기,1940년) 기념비

금강원지(金剛園誌)

금강원(金剛園)은 금정산 연봉(連峰) 남쪽이 다하는 곳에 있다. 산을 등지고 골짜기를 끼고, 기이한 바위들이 쌓여 있으며 푸른 소나무가 울창해서 별천지에 노니는 것과 같다. 소화(昭和) 6년(1931년) 부산의 동원가차랑(東原嘉次郞) 군이 가지고 있던 동산과 못을 개방하고 누각의 문을 설치해서 거금을 투자하여 경영이 자못 순조로웠다. 금년에 황기(皇紀) 2600년을 맞이하여 전 동산을 들어 본읍(本邑)에 기증했다. 읍에서는 이것을 칭찬하고 정리하고 확장하여, 산성 동남쪽 양문으로 통하는 회유(回遊)하는 숲길과 함께 온천공원을 만들어, 유람관광의 명승지를 만들려고 한다. 이에 기념비를 세우고 유래를 새겨서 이것을후손들에게 전하고자 하노라.

황기(皇紀) 2600년 소화(昭和) 15년(1940) 11월 10일 동래읍장 종칠위 산구정

황기(皇紀) 2600년(서기,1940년) 기념비

조선예수교장로회는 황기 2600년을 기념키 위해 10월 20일을 애국주일로 정하기로 총회에서 결의하였고, 이 시기에 조선에 있던 외국인 선교사가 대거 출국하기 시작한다. 대한 예수교장로회 포교관리자 각 노회에 신사 참배와 창씨개명을 하도록 강요하고 경고문을 발송하다. 위 내용으로 보면 종교계에서 까지 황기(皇紀) 2600년(서기,1940년) 기념하기 위하여 대대적으로 일본인뿐만아니라 조선인에게 까지 일본천왕(일왕)을 신격화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황기(皇紀) 2600년(서기,1940년) 기념비

황기(皇紀) : 일본의 황실에서 사용하는 일본 황실 연호입니다. 일본의 천왕(일왕)이 처음 황제로 즉위한 해가 황기(皇紀) 1년 입니다. "황기(皇紀) 2600년 기념비"라고 비석의 제목이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아래의 비문의 내용은 일본의 황실과 관계가 없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해방이후 이 비석에 씨멘트를 발라서 훼손한 흔적이 역역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글짜를 직접 육안으로 확인 할 수가 있습니다.

금강원(金剛園)의 유래,위치 등과 온천공원의 공원화 등에 관하여 기술한 비문

오른쪽에서 부터 재부산일본국총영사관 전문조사원 키쿠찌 유지,부산시민모임 공동대표 유진훈,
(사)부산국제친선협회 사무국장 이상점, 일본어 교육생 3명,부산문화유산 해설사 2명도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