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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年 1月 韓·日歷史文化探險隊

의령군 정암교 / 의령 전매청건물

 의령군 정암교

경남 의령군 의령읍 정암리의 정암루는 의령의 관문인 정암교 옆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다.
정암루는 조선 중기 취원루가 있었던 자리인데, 취원루는 소실되어 없어졌고 1935년 이 고장 유림과 유지들이 그 자리에 정암루를 지었다 한다. 이 정암루 바로 아래가 정암나루가 있던 자리인데, 이 자리는 1592년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이끄는 의병들이 진격하는 왜군을 격퇴시킨 전적지로 유명하다.

정암루 일대는 경치가 아름답고 잉어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정암교 아래 길게 굽이쳐 흐르는 남강 가운데에는 솥 모양의 바위 하나가 있는데 정암 또는 솥바위라고 한다.

정암교(鼎岩橋)는 일본을 대표하는 교량엔지니어인 가바시마 마사요시(樺島 正義)가 설계지도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바시마 마사요시(樺島 正義)는 니혼바시(日本橋) 설계자로, 미국에서 공부한 뒤 일본에 돌아와서 도교(東京)시의 기사가 되고, 니혼바시(日本橋), 신오하시(新大橋), 가지바시(鍛冶橋), 고후쿠바시(呉服橋) 등 당시의 시가지다리(市街橋)의 디자인을 추진한 인물입니다.


그 후 도교(東京)시를 그만두고, 일본에서 최초의 교량설계 사무소인 가바시마(樺島) 사무소를 개설하였습니다. 특히, 자연경관에 대한 의식이 매우 강했던 엔지니어로, 일본의 다리의 경관설계의 파이어니어로서 위치를 부여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마쓰다 아쓰이(増田 淳)가 「최신의 구조형식을 자유자재에 능숙하게 사용한 천재피부의 엔지니어」라고 한다면 가바시마 마사요시(樺島 正義)는 「일본 최초의 경관파 교량 엔지니어」이다.


가바시마 마사요시(樺島 正義)는 경상남도에서 현재 옛날 구포 다리 인 낙동교(洛東橋), 창녕의 남지교(南旨橋), 의령 정암교(鼎岩橋) 3개의 교량을 설계 지도를 했습니다.


낙동교(洛東橋), 남지철교(南旨橋)의 2다리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설계 지도를 행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깊이 설계내용에 관련되지 않았던 것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바시마 마사요시(樺島 正義)의 사상이 가장 잘 발휘 된 것이 의령 정암교(鼎岩橋)로 초안이 정암(鼎岩) 바위에 교각을 세워서 공사를 편안히 하는 설계이었던 것을, 가바시마 마사요시(樺島 正義)는 「정암(鼎岩) 바위를 보존하고, 또 다리로부터 정암(鼎岩) 바위를 바라볼 수 있게, 또 정암(鼎岩) 바위와 다리가 풍경으로 조화되게」라고 반대해서 다리의 위치를 변경시켰습니다. 가바시마 마사요시(樺島 正義)의 다리의 경관설계 사상이 잘 드러난 사례입니다.


원 설계는 트러스 부분이 5경간으로 되어 있고, 한국전쟁(6.25사변) 당시 깨졌다. 교량기술사적인 가치는 유감스럽지만 그다지 있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구조로서는 보통의 겔바토라스이고,  디자인으로서는 특히 뛰어나게 보이지 않습니다.


의령 정암교(鼎岩橋) 설계 당시 경상남도의 토목과장이었던 우에다 마사요시(上田 政義)는 아무래도 이전에 도교(東京)시의 도로과에서 일하고 있어서 그 때부터 가바시마 마사요시(樺島 正義)와 면식이 있었다.


창녕의 남지교(南旨橋) 공사감리를 담당한 모리요시 다로(森吉 太郎)는 이전에 가바시마(樺島) 사무소의 스탭으로 창녕의 남지교(南旨橋)의 설계에 즈음해서 가바시마 마사요시(樺島 正義)에게 설계를 부탁하였다.

정암루

경남 의령군 의령읍 정암리의 정암루는 의령의 관문인 정암교 옆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다.
정암루는 조선 중기 취원루가 있었던 자리인데, 취원루는 소실되어 없어졌고 1935년 이 고장 유림과 유지들이 그 자리에 정암루를 지었다 한다. 이 정암루 바로 아래가 정암나루가 있던 자리인데, 이 자리는 1592년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이끄는 의병들이 진격하는 왜군을 격퇴시킨 전적지로 유명하다.
정암루 일대는 경치가 아름답고 잉어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정암교 아래 길게 굽이쳐 흐르는 남강 가운데에는 솥 모양의 바위 하나가 있는데 정암 또는 솥바위라고 한다.

재벌 총수 3명 낳은 경남 의령의 ‘솥바위’ 전설 화제


경상남도 의령을 가로지르는 남강에는 마치 솥뚜껑처럼 생겼다 해서 솥바위(鼎岩)라고 불리는 바위가 우뚝 솟아 있다. 이 바위는 반쯤 물 위에 드러나 있고 물 밑에는 세 개의 큰 기둥이 받치고 있는 기이한 형상을 띠고 있다. 그래서인지 의령에서는 이 솥바위를 둘러싼 여러가지 속설이 전해진다.

그중 이 바위를 중심으로 반경 20리(8㎞) 이내에서 큰 부자가 나온다는 일설이 있다. 이름이 상징하듯 ‘정’(鼎)은 세 개의 발이 달린 솥을 뜻한다. 솥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밥을 지을 때 없어서는 안될 살림살이로 곧 부와 일맥상통한다. 또 세 발은 곧 삼공(삼정승)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일대에서 그에 해당하는 3명의 훌륭한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고 솥바위와 부를 연결시킨 풍수설이다.

물론 ‘설’이다. 하지만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의 출생지가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8㎞)고,LG그룹 고 구인회 회장(7㎞)도 진주시 지수면에서 태어났다. 효성그룹 고 조홍제 회장도 함안군 군북면(5㎞)이 고향인 것을 보면 뭔가 그럴 듯해 보인다. 그 이전에도 경상남도의 최고 만석꾼 이부자댁이 이곳 의령이었다고 해 사람들의 눈에는 지금도 이 솥바위가 부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정암(솥바위)의 위상은 그 일대의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정암루 정암들 정암교 정암제 정암마을 등 온통 ‘정암’이 들어간 지명 일색이다. 허백영 의령문화원 원장(67)은 “동남쪽으로 남강이 흐르고 서북쪽으로는 자굴산이 뻗어 있는 배산임수의 길지가 바로 의령”이라며 “특히 자굴산의 마지막 줄기가 솥바위를 바로 10m 앞에 두고 물에 잠겨 있는 형상이 예사롭지 않아 솥바위에 관련된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도 의령 정암과 함안 정암마을은 모두 알부자 동네로 소문나 있다. 집집마다 승용차와 트럭이 있고 창원을 비롯한 인근 도시에 한두 채의 집이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는 1924년 정암제방이 완공돼 매년 범람했던 물 걱정이 사라지고 온난한 기후와 농경기술 발달로 참외-수박-수박-벼의 1년4작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일부 사람들은 이곳 마을주민들이 섣달 그믐날이면 이 바위에 왼새끼줄(금줄)을 치고 동신제 용왕제 등을 올린 뒤 솥바위의 정기를 받아 인구 3만5,000명 정도의 땅에서 부자가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한다. 솥바위 때문에 부자가 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랫동안 갖은 풍상을 겪으면서도 의연한 모습으로 강심에 세 발을 담근 채 서 있는 솥바위는 언제나처럼 신묘한 기운을 내뿜고 있다.

 

의령 전매청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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